스파크랩 8기 데모데이 발표 스타트업 중 이색적인 사업모델을 가진 기업이 있었다. 쿠엔즈버킷이라는 참기름 제조 스타트업이 그곳이다. ‘글로벌 액셀러레이터를 표방하는 스파크랩이 왜 참기름 제조사를?’ 이란 의문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기업을 살펴보니 기술회사였다.
쿠엔즈버킷은 냉압착 방식의 고품질 식용 기름을 제조하는 기업이다. 때문에 맛과 향이 기계적 착유방식으로 제조한 기름보다 좋으며, 원적외선으로 저온에서 볶아내어 유해물질 발생을 최소화한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순수자연물질로 만들어진 제약용 필터로 한 번 더 걸러내어 바로 병입하므로 불필요한 산패과정도 없다.
인터뷰를 위해 아침 10시에 방문한 쿠엔즈버킷 매장 안은 참깨를 나르느라 북새통이었다. 올해 쿠엔즈버킷의 예상 매출액은 10억 원. 다소 버거워 보이는 상황임에도 공장 규모를 함부로 넓히지 않는 데에는 ‘참기름’에 대한 회사 대표의 고집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강남 아파트 단지 옆에 위치한 18평짜리 ‘방앗간’을 찾아갔다.
쿠엔즈버킷 박정용 대표
■한국의 방앗간 + 작은 공장 시스템 = 쿠엔즈버킷
백화점 식품 컨설팅 일을 하다가 쿠엔즈버킷을 창업했다. 왜 참기름이었나?
지방에 있는 식품 명인을 만나 제품을 소싱하는 일을 3년간 했다. 그 이전부터 참기름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7년간 자료 조사를 했었다. 딱히 시장성을 내다보고 시작한 건 아니다. 그냥 동네 방앗간을 좀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판도 재밌게 달고, 바닥 청소도 깨끗이 하는 식으로.
매장에서 생산도 직접하고 있는데, 공간이 좁아 보인다.
일본의 작은 공장 생산(Small manufacturing, 町工場) 시스템에 관한 글을 읽었는데, 굉장히 와 닿았다. 생산 시설 자체가 소비자의 거주 지역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철학이다. 특히 식품의 경우, 가공 과정뿐만 아니라 원물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그대로 살아 있는 상태에서 소비자에게 신선하게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 올리브유의 경우에도 현지에서 그 맛을 보면 느낌과 신선도가 완전히 다르다. 참기름을 다운사이징 제조 시스템으로 생산하고자 지금의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저온 착유 제조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사실 씨앗에서 기름을 분리할 때, 기존의 고온 압착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다.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기름을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참기름은 고온에서 방부 성분이 생기기 때문에 고온 제조가 유통에도 용이하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공급자 관점에서의 효율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일률적인 참기름 맛은 소비자가 아닌 공급자가 정한 것이다. 나는 이 공급자 관점에서 설계된 참기름 시장을 소비자 관점으로 바꾸고 싶었다. 참깨는 본래 향이 없는 씨앗이지만, 높은 열을 만나며 탄 맛과 향이 짙어진다. 참깨가 타면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검출되는 경우도 있다. 한 방울만 넣어도 모든 음식을 한식으로 만들어버리는 고집 센 식재료다. 하지만 다양한 저온 추출법이 개발되면 참기름의 맛도 다채로워질 수 있다. 커피가 쓴맛, 신맛, 단맛 등 넓은 스펙트럼의 풍미가 있듯이 말이다. (쿠엔즈버킷의 참기름 제조 과정)
새로운 제조 시설과 방식을 갖추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2년 반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일단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다. 전반적인 생산 라인을 만드는 문제였고, 지금까지 개발되어 온 기계적 노하우들을 모두 뒤집어야 했다. 기계를 세팅해 놓고도 1년 정도는 제품을 팔지 않고 계속 테스트했다. 그 과정에서 기계가 깨지는 등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많았다. 또 저온 압착을 하게 되면 원료의 맛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추출법은 물론 원료 관리도 중요해진다. 예를 들어 왕겨 포대 창고 옆에 있었던 참깨로 기름을 짜내면 참기름에 왕겨 냄새가 그대로 밴다. 늦장마가 온 해에는 깨의 완숙도가 낮아서 참기름 맛이 떨어진다. 재배 토양별로도 기름의 색이 다 다르다. 원료에 담긴 이야기가 드러나는 참기름을 만들기 때문에, 재배 계약을 맺은 농가를 수시 관리하고 있다.
생산부터 유통까지, 모두 쉽지가 않았겠다.
처음엔 동네 아파트 주민들이 지나갈 때 한 숟가락씩 맛보라고 나눠줬다. 그것 이외에 따로 마케팅을 한 적은 없었고, ‘참기름이 원래 이런 맛이었나?’하고 빠져든 고객들이 입소문을 내줬다. 그들이 지인에게 선물을 해주고, 백화점 입점을 추천해주기도 하고. 본격적인 마케팅에 의해 넓혀진 시장이 아니다 보니, 지역별 원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유통처가 분산되어 있다. 현재는 온라인 판매, 백화점, 호텔,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유통한다.
■미슐랭 스타 쉐프를 타고 ‘제2의 올리브유’가 될 것
쿠엔즈버킷이 업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스파크랩 데모데이에 등장하면서부터였다. 나도 놀랐다. 엑셀러레이터가 왜 참기름에 투자했을까 하고.
처음엔 스파크랩측도 고민이 많았다고 하더라. 일단 푸드 산업 자체에 투자한 적이 없고, 알다시피 글로벌 진출이 유망한 테크 기업들에 주로 투자를 해왔다. 나는 7기 스파크랩 데모데이를 관람하고, 그다음 날 지원서를 제출했다. 꼭 투자받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판단에 의해서 투자 결정을 했다고 보나.
정확한 건 그쪽에 물어봐야 하겠지만. 참기름을 들고 국외 시장에 나가보려고 한다. 벤더를 통해서 대충 판매하는 게 아니라, 프리미엄 브랜드로 제대로 진입하고 있다. 올리브유가 세계로 시장을 넓히고 유명해진 게 15년이 채 안 된다. 기름 시장은 굉장히 보수적인 것 같지만, 사실 빠르게 변화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 해외에서 참기름을 식재료로 즐겨 쓰진 않지만, 참깨(Sesami)라는 식재료에 대해서는 친숙해 한다. 최근에는 항암 효과도 인정받고 있어서, 유럽에서는 ‘세서미 오일이 들어 있는 찬장은 약장과 같다’고 할 정도다.
해외 진출을 위해 최근에 하고 있는 노력이 있다면.
미국 뉴욕 현지의 푸드 매거진과도 협력하고 있고, 그쪽에 있는 미슐랭 스타 쉐프 레스토랑과도 레시피 개발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찾게 된 파트너가 스파크랩이기도 하다.
확실히 올리브유 정도의 대중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참기름을 활용한 요리 레시피가 많아져야겠다.
그렇다. 이전에는 참기름의 강한 향이 모든 음식 재료를 덮어버렸기 때문에 해외 쉐프들은 잘 사용하지 않았다. ‘내 음식에 재(Ash)’를 뿌리냐’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저온 압착 방식의 참기름을 먹어 본 해외 쉐프들은 마치 견과류를 씹었을 때의 고소한 맛이 난다며 재밌어한다. 처음엔 피넛 버터냐고들 묻더라. 현재는 스타 쉐프와 함께 참기름으로 각종 드레싱을 개발하고 있다. 외국 사람들이 간편하게 찍어먹을 수 있는 소스류로도 계속 접근해 볼 계획이다. 단순히 로컬 푸드를 널리 알리는 수준이 아니라, 오리엔탈 풍미를 내는 일상적인 식재료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쿠엔즈버킷의 들기름과 참기름. 들기름은 2.5만 원, 참기름은 3.9만 원에 판매하고 있다.
■ 창업 4년차, 위기는 매일 왔다
2012년에 시작했으니, 창업 4년 차에 접어들었다. 스타트업은 3년이 고비라고 한다. 창업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라고 생각하나.
위기는 매일 있더라. 선택도 매일 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솔깃한 제안들이 많이 들어온다. 그런데 그보다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왔던 모습을 잊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는 게 정답인 것 같다. 쉬운 방법을 택하려고 하지 않았다. 쉬운 솔루션을 들고 오는 사람일수록 위험한 경우가 많았다. 쉬운 길은 언제나 대가를 요구한다. 우리도 주변에서 답답한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쿠엔즈버킷이라는 브랜드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 가졌던 생각, 처음 풀고자 했던 어려움이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매출을 최우선으로 두면 모든 게 다 틀어진다. 특히 식품 쪽은 다른 분야와 다르게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 쌓아가야 한다. 처음에 요란했던 식당들이 1년을 못 가고 문 닫는 경우를 많이 봤다. 참기름이라는 것이,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가 먹어 왔고 어머니가 시골에서 자식들에게 보내주기도 하는 감성적인 식품이다. 이것을 다루는 데 일반적인 사업 확장 방식을 취할 수는 없었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 당연히 생산 시설도 확장해야 한다. 소규모 생산 철학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사업을 키우기 위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거점별 소규모 공장을 갖추는 형태가 될 것이다. 거기에 식당이나 판매장을 붙일 계획이다. 소비자와 맞닿아 있는 소규모 공간들을 만들고 싶다. 프랜차이즈 방식은 아니다. 매장마다 지역색을 담은 참기름을 생산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각 지역에서 농사지은 참깨로 기름을 짜내는 식이다. 그렇게 바로 짠 기름으로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올해 안 혹은 내년 초까지 빠르게 진행해보려고 한다. 또 과거 저온 압착 방식으로 기름을 짜다 보니 타지 않는 참깻묵이 나온다. 축산 농가에서 자연 방목하는 닭들이 우리 깨묵만 먹는다고 한다. 이걸 먹고 자란 닭들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확연이 낮다. 이 부분을 성균관대 식품 연구소와 함께 연구·개발하고 있다. 후방 산업 효과도 크다고 본다.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에 대해 말씀해달라.
일단 지역별 거점 공장을 증설할 계획이다. 내년도에는 홍콩과 미국에도 거점을 마련한다. 일본도 유력한 시장인데, 제조 파트너를 찾기 쉽지가 않아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장기 목표는 올리브유와 견줄 수 있는 참기름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 지역색을 살린 기름으로 대결하고 싶다. 외식 사업은 물론 레시피 박스 배달, 출장 요리와 같은 서비스도 같이 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쿠엔즈버킷은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현재는 우리가 만들고 싶었던 모양의 10% 정도를 달성했다. 할 일이 많을 것이다. 오일 시장에 있어서 쿠엔즈버킷이 전 세계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 지켜봐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