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못하면 회사의 명예는 바닥으로 떨어질 거예요. 거기에 여자이기 때문에 몇몇 수식어가 붙을지도 몰라요. 여자라서 못했다고 할 수도 있고, 잘 하면 ‘여자인데 제법이네’하는 게 현실이니까요. 이런 사회의 인식을 비틀어 여성이라는 것이 장점일 수 있게 노력할 겁니다.”
게임과 클래식 사이를 절묘하게 잇는 게임음악 스타트업 ‘플래직’은 보수적 지휘자 세계에 당당히 발을 들인 여성지휘자 겸 예술감독 진솔 대표가 운영하는 만 1년 된 기업입니다.
플래직은 클래식 업계에서 ‘게임’을 접목한 사업을 시도중입니다. 게임 매니아 음악부터 대중적 음악까지 재해석한 곡으로 E-스포츠 경연대회장을 채우고, 게임에 음악이 정식으로 삽입되기 전 과정을 돕기도 합니다. 궁극적으로 클래식의 대중화를 꿈꾸지만, 품격있는 음악 수준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플래직의 도전은 의미 있는 자취를 남길 수 있을까요.
진솔 플래직 대표/사진=플래텀 DB
여성 지휘자이자 기업 대표입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독일 만하임 국립음악대학교를 졸업했고 현재 아르티제 예술 감독, 대구MBC교향악단의 전임지휘자이자 다양한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를 맡고 있습니다. 동시에 게임 음악 콘텐츠 기업 ‘플래직’의 대표에요. 작곡가 ‘말러’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인 ‘말러리안’이라는 단체도 운영 중이고요.
플래직 창업의 동기나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말러리안을 운영하며 콘텐츠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에 흥미를 느꼈어요. 제 인생의 기반은 클래식인데 이를 활용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죠.
클래식이 예전에 비해서는 대중화 됐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드라마 음악에도 클래식이 활용되기도 하고요. 문제는 대중과의 접점이 많아질수록 연주자 스스로의 만족감이 떨어진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던 중 ‘게임’이라는 콘텐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국내 유수의 게임 기업이 음악작업을 동유럽 오케스트라와 한다는 것도 알았고요. 국내 전통 교향악단은 제안을 거절했고, 팝스오케스트라는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아울러 동유럽은 비용이 저렴한 한편 영상미와 좋은 엔지니어가 갖춰져 있으니 기업이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거죠.
한국에서 관련 시장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게 플래직이 설립됐습니다.
구체적으로 플래직은 어떤 일을 하나요.
종종 듣는 질문이 게임음악을 만드냐는 것인데요. 보통 큰 게임 회사에선 내부에 음악을 만드는 인력이 있어요. 음악을 워낙 좋아해 따로 공부한 분들이죠. 이 음악이 정식으로 사용 되기 위해선 전문가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저희는 이 때 관여해요. 편곡을 하거나 선율을 만들죠. 저희 팀 내부의 미디어 작곡가와 대학원 석사 전공 출신 동료가 담당해 작업합니다.
E-스포츠 경연대회에서 무대를 채워 달라는 요청도 많이 받습니다. 게임음악을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바꿔 달라는 거죠. 소규모 하우스 콘서트, 지휘자로 나설 수 있도록 하는 플래시몹 공연 등 이색 마케팅도 진행해요.
세계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은 직업이 지휘자라고 해요. 관련 프로젝트를 통해 자존감 형성 및 마음 치유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어요. 향후 영상과 팟캐스트 등 콘텐츠를 활용해 바이럴 시키려고 해요.
본인의 업과 회사 일을 병행해야 하는데요. 모두 다 관여하기 힘들지 않나요.
정신은 없지만 최대한 다 관여합니다. 저를 포함한 현재 팀원 모두가 공동 창업자에요. 한 명, 한 명의 역할이 중요해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바쁘다는 핑계로 회사 일을 게을리 할 수 없어요.
플래직은 게임과 클래식 중간에 있습니다. 즉, 게임과 클래식 영역을 모두 취하겠다는 건데요. 기존 업계의 반응은 어떤가요.
클래식 업계에서 환영받고 있습니다. 격려해주세요. 그들 고유의 영역을 건드린 건 아니니까요. 생각도 못했던 걸 한다고 기특해 하는 분도 계시고요. 잘 하는 것만 남았죠.
게임을 좋아하는 모든 이가 게임 음악까지 즐기진 않습니다. 게임음악을 없애 달라는 요청도 많다고 들었어요.
저희도 그런 부분을 최대한 반영해서 기획을 하는 편이에요. 모바일 게임 사운드를 3,4분짜리로 늘려 ‘음악’처럼 느끼게 하기도 하죠. 최근 출시된 대작 게임 뿐만 아니라 이전 세대 게임에도 음악은 있었어요. 저흰 대중에 친숙하게 다가가려고 해요.
음악을 싫어하는 유저도 있겠지만, 반대로 특정 음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그것만 듣는 사람들도 있어요. 테일즈위버, 파이널판타지, 메이플 스토리, 프린세스메이커 등 게임 음악은 유명합니다. 혹은 반복돼서 익숙해진 음악이 있습니다. 오버워치, 스타크래프트 등이 그렇죠. 게임에 몰입하며 음악을 외워버린 거예요.
일반적 대중화보다 매니아 내에서의 대중화를 희망하는 건가요.
‘이해는 되지만 와 닿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고 하는 분들의 의견이에요. 대중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게임을 즐깁니다. MMORPG게임 유저도 있지만, 오락실에서 레이싱 게임을 즐기거나 모바일 게임을 하는 사람들도 많죠. 이들은 게임음악을 바탕으로 한 음악회에 ‘애니팡’ 음악이 나올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저희는 이 점을 상기하며 다가가고 있어요. 잘 알려진 게임음악은 매니아로 인해 유명해졌습니다. 이 테두리를 당장 벗어나긴 힘든데요. 대중을 위한 시도는 꾸준히 하려고 해요.
조직 내 구성원의 역할이 명확히 나눠져 있어요.
‘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인 팀이기 때문이에요. 우리 스스로 열심히 하면 잘 될 사업을 하고 있다고 봐요. 일단 우리 일을 가로막는 이가 없어요. 그래서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일은 정해져 있지만 가끔 한 부서에 일이 몰릴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땐 도와가며 일하고 있어요. 의견이 다를 땐 느리더라도 대화하며 풀고요.
서비스를 발전 시키려면 사람이 더 필요할텐데요. 어떤 인재를 원하나요?
충원 이슈에 대한 의견은 팀원의 생각이 각자 다릅니다. 조율하며 천천히 영입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론 이과적 인재가 합류하면 좋겠어요.
사업 확장을 위한 올해의 화두는 무엇입니까.
브랜딩입니다. 영상 채널과 팟캐스트 채널을 통해 꾸준히 저희 콘텐츠를 홍보할 생각이에요. 아울러 게임의 정의에서 조금 벗어나고자 해요. 컴퓨터, 모바일에서만 하는게 게임은 아니잖아요. 놀이까지도 포함되면 더욱 다양한 콘텐츠가 나올 거라 보고 있어요. 어쩌면 대중이 잘 몰랐던 클래식 관련 지식을 만들어 전달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브랜딩 활동을 숫자로 환산하지 않는다고요.
길거리 버스킹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공연 몇시간 전 이불을 덮어쓰고 공연 자리를 선점하려는 관계자들이 있어요. 그들이 맡아놓은 자리에서 공연 장비를 설치하는데요. 여기에만 2시간 정도 소요돼요. 이후 2시간 정도 공연을 하고요.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위해 공연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기꺼이 감수하는 거죠. 사실 이들이 하는 건 단순 거리 공연이 아니에요. 정확히는 정식 공연을 알리기 위해 여는 홍보수단이죠.
결은 조금 다르지만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팬을 모으고, 우릴 알리기까지 행하는 모든 활동을 돈으로 환산하는 건 무의미하다 생각해요. 다만 노력을 되새기며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시간이 많이드는 일이고 자금도 필요한 일입니다. 투자 유치는 생각하고 있나요.
실제로 돈이 많이 들어요. 이런 상황에서 인지도와 능력도 없는데 투자 해달라고는 못 하죠. 많은 이들이 ‘부르주아’계 사업 이라고도 해요. 투입량에 비해 결과물이 아직 기대 이하거든요.
전 여성이 금기시 되던 분야에서 살아남았어요. 이 일도 비슷한 끈기를 가지고 노력하면 잘 될거라고 봐요.
올해는 영업도 적극적으로 하실 계획이라고요.
우리 영역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수준 보장을 내세우려고 해요. 다행스럽게도 제가 영업을 해서 효과가 나빴던 적은 아직 없어요. 문제는 제가 못하면 회사의 명예가 바닥에 떨어진다는 거예요. 거기에 여자이기 때문에 몇몇 수식어가 붙을지도 몰라요. 여자라서 못했다고 할 수도 있고, 잘 하면 ‘여자인데 제법이네’하는 게 현실이니까요. 이런 사회의 인식을 비틀어 여성이라는 것이 장점일 수 있게 노력할 겁니다. 성과가 좋게 나타나면 여성이기 전에 ‘지휘자’ 대표가 발로 뛰는 곳이라고 좋게 봐주실 거라고 믿어요.
손익분기점은 언제쯤 넘을 수 있을까요.
품질을 조금 낮추면 빠르게 달성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하기는 어려워요. 팀원들이 그걸 용납하지 않아요. 이들의 의지를 묵살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이유로 올해까지는 손해를 보지 않는 한도 내에서 진행하고, 좋은 무대를 만드는 동시에 문화를 알리는 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사업을 하며 자주 듣는 말은 뭔가요. 부정적인 피드백일 때 대처방법은요.
비즈니스 미팅 자리에서 사업 계획을 밝히면 ‘그게 뭔데요?’라는 말을 더 많이 들어요. 아직은 그게 우리 사업의 현실이니까요. 8년 전만 하더라도 여자 지휘자가 인정받지 못하는 시기였어요. 지금은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요. 그렇게 되기까지 선구자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희 사업엔 버티는 시간이 필요해요. 눈 앞에 좋은 결과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투자할 가치가 없지는 않아요. 이런 일로 흔들리는 걸 가장 경계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추구하는 비전을 알려주세요.
국내 클래식 시장 규모는 정말 작습니다. 그래서 이를 분배하는 데 힘들어하죠. 그 영역에서 버티면 인정 받고, 영역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클래식이 아니라고도 해요. 이렇다 보니 레슨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 보편적 수익 모델이었죠.
저희는 이 영역만 옳은 게 아니라 다른 것도 맞을 수 있음을 ‘게임’으로 증명하고 싶어요. 그게 가능하려면 좋은 게임 회사와 결합해 완성도 있는 무대를 많이 만들려고 해요. 이를 위해 지금 열심히 바탕을 만들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