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좋아해 과학고에 진학했고, 대학에서도 수학을 전공한 김재연 대표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면 재밌는 걸 선택하는 편이라 한다. 국내 축산업계 구조를 개선하는 것 역시 그에겐 또다른 차원의 재미다. 돼지고기 삼겹살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고.
김 대표를 포함해 네 명의 젊은 창업자들이 같은 목적으로 뭉친 ‘정육각’은 도축한지 1일~3일된 암퇘지만 판매하는 육가공품 유통 스타트업이다. 올해 2월 시작했지만 첫 달에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등 빠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나이 스물 여섯, 지금보다 이후가 더 기대되는 정육각 팀의 김재연 대표를 만났다.
김재연 정육각 대표
정육각 이름의 의미는.
온라인 정육점이기 때문에 ‘정육’이라는 단어는 넣어야 했고 뒤에 이어붙일 단어를 이것저것 검토하다가 ‘각’을 선택했다.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회사 명은 마음에 든다.
서비스를 설명해달라.
‘초신선 돼지고기 온디맨드 생산판매 서비스’다.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돼지고기가 유통되려면 7일정도 걸린다. 하지만 우리는 도축된 지 3일된 고기만 판다. 시장에 없는 신선한 고기다.
마트 판매 고기와 정육각의 판매 고기 도축일이 차이는 왜 나는지.
축산업은 기본적으로 B2B와 B2C간 비율이 9:1이다. 그러다 보니 보여주는 것 위주로 흘러간다. 대부분 소고기에 마블링이 있는게 맛있다고 알고있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고를 때도 마블링 있는 고기를 선호하는데, 정말 맛있는 고기는 마블링이 안 낀 암퇘지다. 하지만 시장 인식을 바꾸기가 어려워서 일부러 마블링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그 과정에 3일 정도 소요된다. 그래서 아무리 빨라도 5일 이상 걸리는 것이다. 우린 그 과정이 없다.
소는 숙성한 게 맛있다고들 한다. 돼지는 그 과정이 필요없나.
보통 도체가 큰 소의 경우 사후경직은 이틀에서 5일까지 걸린다. 그래서 도축된 지 사나흘 된 소고기를 먹으면 맛이 없다. 그런데 돼지는 24시간이면 끝난다. 닭은 더욱 빨리 끝나고.
이 서비스를 생각하게 된 계기는.
돼지고기를 좋아한다. 친척집에서 도축한 고기를 꾸준히 먹다가 나중에 시중에서 파는 고기를 먹었는데 맛에서 현저한 차이가 났다. 먹을때마다 그게 의문이었는데 작년 12월 우연히 사먹은 고기의 도축날짜를 봤다. 도축된 지 90일이 지난 고기였다. 신선한 돼지고기를 가정에 공급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위생 교육을 받은 뒤 올해 3월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현재까지는 소비자 반응이 좋아서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벌써 카피캣도 생겼다고.
슬로건을 비롯해 우리 서비스와 거의 똑같은 업체가 하나 생겼다. 하지만 경쟁자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쪽 서비스는 중개에 가까워 보이는데, 그럼 맛에 집중하기 어렵다. 사실 우리와 비슷한 서비스가 나오는 것은 소비자에게 좋은 일이다. 도축일자를 정확히 알고 먹게 되는 거니까.
주부 타겟 시장이다. 어떻게 홍보하고 있나?
홍보를 해보며 느낀 게 있다. 주부들은 온라인으로 고기를 사먹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미심쩍어 한다. 또한 맛있는 정육점이 있다해도 단골 정육점에 간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우리가 홍보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우리 서비스를 먼저 써본 사람들이 주변 지인에게 추천해주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다. 현재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홍보하고 있다.
후기를 살펴봤는데, 대부분 호평이다. 대가성 후기인 줄 알았다.
우리 사이트의 후기는 100% 순수한 사용자 의견이다. 우리가 보기에도 너무 평가가 좋아서 오해 사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 하지만 그만큼 맛있었기 때문에 좋은 반응이 있었다 본다.
돼지고기 가격은 콜레라와 구제역 등 재해급 이슈가 생길 수 있다.
B2C 시장의 장점이자 단점이 그거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콜레라와 구제역이 퍼지면 근처 농가는 모두 폐쇄되고 돼지고기 값은 폭락한다. 소비자가 먹게 될 돼지가 콜레라에 걸릴 확률은 거의 없지만 이때 소비량이 급격히 떨어진다. 우리끼리 농담삼아 하는말이 그런 사태가 발생하면 휴가를 가서 고기나 먹자는 거였다.
화훼산업, 농업 등은 1차 산업 특유의 카르텔이 있다. 축산업도 없지는 않을듯 싶다. 어떻게 타개하고 있나?
온전히 우리 힘만으로 극복한 것은 아니다. 축산업은 기본적으로 눈속임이 비일비재한 곳이다. 더불어 시장에 새로운 사람이 배척하고 경향도 강하다. 그것을 극복해 내는게 어려웠다. 그러던 중 어떤 분이 젊은이들이 기특하다고 도와주고 싶다며 농장 소개부터 추천까지 우리가 처음에 하기 어려운 부분을 해결해줬다. 어렵긴 하지만 그런 분들이 있어 비교적 수월하게 일하는 중이다.
궁극적으론 농장도 설립할 생각인가.
농장 운영은 비용도 많이 들고 리스크가 커서 생각하지 않고 있다. 다만 우리 돼지가 먹을 사료업체는 생각해보고 있다. 사료부터 깐깐하게 시작하면 더욱 맛있는 고기를 팔 수 있지 않겠나. 대기업 유통마트 중에 고기로 유명한 곳은 대부분 사료부터 엄격하게 관리하는 곳들이다. 이런 곳은 가격이 조금 비싸도 소비자들이 지갑을 연다.
B2C 사업이지만 B2B도 가능할 것 같은데.
가끔 우리에게 역으로 연락오는 업체들이 있다. 고깃집은 아니지만 고기 재료가 중심인 곳들이다. 식품관에 입점하는 대신 식당에 우리 제품을 납품하면 B2B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런 쪽으로의 B2B영업을 생각하고는 있다.
소나 닭 등 다른 육가공품 사업으로 확장할 생각은 없나.
닭은 돼지보다 더욱 신선도에 민감하다. 돼지고기를 다루다 보면 노하우가 다져질 텐데 그 때 쯤엔 닭도 다룰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소는 아직 잘 모르겠다. 신선도를 중시하는 우리의 사업 방향과 조금 다른 영역이라 보고 있다.
4억원을 투자 받았다. 투자처는 어떻게 되나.
프로토타입 운영 시절엔 손으로 고기를 썰었다. 그땐 하루에 100근~150근정도 판매했다. 투자금은 작업장을 구비하고 공장을 자동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현재는 평균 200근 정도 판매되고 있다. 평균 5 ~ 600근 팔게 될 때 다음 라운드 투자를 준비할 생각이다.
투자 받은 경로가 궁금하다. 투자사가 왜 이 사업에 투자했다고 보나?
우리 사업은 처음부터 BEP는 넘기고 시작했다. 투자가 없이도 운영은 됐지만 투자금이 없으면 폭발적으로 회사 규모를 확장하기 어려웠다. 자동공정이 꼭 필요했기 때문에 투자자를 찾아다녔다. 투자자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사업을 말린 분도 계셨고, 수학을 전공했으니 축산업 하지말고 수학 교육사업을 하란 분도 계셨다. 현재 투자자는 우리 사업의 진정성을 믿어줬다. 투자 과정도 빨랐고.
고기 판매사업이지만 IT와 접목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가?
식품 O2O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사업의 근간은 맛이다. 맛이 있어야 재구매율이 높아지는 건 자연스런 이치다. 우리가 추구하는 맛이 보존되려면 신선함이 밑받침 돼야하는데, 축산업 시장에서 신선한 맛을 대중에 알리는 관건은 공장 자동화를 위한 코딩 시스템에 있다. 축산업이 1차 산업 이라고는 하지만 IT가 없으면 정말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어렵다는 뜻이다. 우리가 여타 정육점 직원과 축산업 관계자들과 다른 점도 낡은 축산업계에 IT를 접목했다는 데 있다고 본다. IT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축산업에서는 바로 팔 수 있는 온디맨드가 될 수 없다. 이미 해외엔 1차 산업 구조에서 IT를 접목해 니치 마켓을 공략하는 기업들이 많다. 그들 대부분이 BEP를 넘겼고 사업 규모도 큰 편이다.
창업 전후로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나는 괜찮은데 가족 등이 주변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가장 든든한 지원군인 부모님께 특히 죄송한 마음이다. 창업 자체는 재밌고 고기를 파는 것도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몇 천 년 전부터 내려온 ‘도축업=백정’ 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나만 즐겁자고 하는 사업이 아닌데도 복잡한 마음이 가끔씩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더욱 열심히 달려서 이 이미지를 빨리 바꾸고 싶다.
부모님이 든든한 후원군이라고 했다. 어떻게 설득했나.
올해 2월에 대학을 졸업하면서 유학을 가려고 준비하던 중 이 서비스의 프로토타입을 돌려보고 있었다. 시장 반응이 좋았고, 유학 가서 공부하는 것보단 하고싶은 걸 하는 게 재밌을 것 같았다. 그래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는데 처음에는 완강히 반대하셨다. 그래서 이 사업이 잘 되는걸 입증하겠다 설득했고 다행히 잘 이어왔다. 이제는 이해해 주신다.
사업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팀빌딩은 어떻게 했나.
고등학교, 군대, 창업 동기까지 나 외에 접점이 없었던 네 명이 모여 합심해 일하고 있다. 지금은 공장 아주머니 두 분을 포함해 총 6명이다.
코파운더 이후의 사람들을 만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팀원은 우리 서비스를 통해 뭘 얻고 싶은 지가 명확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일이 남들이 기피하는 축산업에 속한 만큼 그걸 분명히 하고 싶다. 그 주관이 없으면 오래 하지 못할 것 같다. 비전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완전 같진 않다 하더라도 맞춰가며 일하고 싶다.
회사 아이덴티티가 명확한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창업 1세대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팀 색깔이 유지되는 것 같다. 우리는 B2C사업을 하는데 디자이너가 없어서 걱정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디자이너가 서비스와 팀에 불어넣는 영향력이 큰데 말이다. 좋은 사람을 영입해 멋진 회사를 만들고 싶다.
지키고 싶은 여러가지 철학 중에 식품관에 입점하지 않는다는 것이 있다. 중개는 소비하고 남은 물건이 재고가 된다. 식재료는 마진폭이 10~15%일정도로 수수료가 낮은 편인데, 팔릴 때까지 고기를 가지고 있으면 우리의 원칙과 위배된다. 요청은 많이 들어오지만 하진 않을 거다. 그리고 이 원칙을 이해해주는 팀원들이 많은 회사를 꾸리고 싶다.
대표 김재연에게 정육각이란 무엇인가?
정육각 이전에 나를 둘러싼 것들은 공부와 수학이 전부였다. 탁상공론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살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지금 내게 축산업과 정육각은 또 한번 몰두하고 싶은 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