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컵 예찬론자들은 말한다. ‘생리컵 사용 전과 후로 내 인생을 나눌 수 있다’고. 소주컵만한 실리콘 덩어리가 인류 절반의 삶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사실에 황룡 대표는 매료됐다. 하드웨어도, 월경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던 그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품고 IoT 기능이 장착된 스마트 생리컵 ‘룬컵(looncup)’을 개발해냈다.
룬컵은 작년 10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에서 첫 캠페인을 시작했다. 최종 모금액은 16만608 달러(한화 약 1억8천만 원)로 당초 목표 금액의 3배 이상을 넘긴 수치였다.
룬컵은 오는 연말, 실제 양산과 배송을 앞두고 있다. 룬랩(loon lab)의 황룡 대표를 만나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2년 전 플래텀과 인터뷰했었다. 저작권 사업에서 생리컵 사업으로 방향을 틀게된 계기가 있다면.
저작권 관리 사업을 국내와 태국에서 총 6년간 했다. 시기상조이기도 했고, 서비스 개념 자체를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워하더라. 또 세상을 바꾸는 게 내 꿈인데, 그러기엔 너무 소수의 사람만 만족시키는 서비스가 아닌지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더 대중적인 서비스를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헬스케어 분야로 가닥이 잡혔다. 측정-기록-개선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오래 쓰는 헬스케어 기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기록’이라는 활동에 좀 더 익숙하고 관심 있는 대상 층이 여성일 거라고 가정하고, 여성 헬스케어로 최종적인 테마를 정했다.
처음엔 케겔 운동(회음부 운동)기기로 시작했었다고.
여성 헬스케어 분야 내에서 현재 터부시되지만 소비자의 니즈와 동기가 분명한 걸 찾다 보니 케겔 운동기를 만들게 됐다. 요실금 치료와 성감 증대라는 두 가지 문제를 풀 수 있을 거라고 봤다. 결국 잘 안됐지만.
무엇이 실패의 요인이이었나.
요실금 측면에 대한 가설 검증에 실패했다. 비뇨기과 의사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두 가지 부분에서 착오가 있었다. 먼저 한국에서는 요실금 자체가 부끄러운 질병이기 때문에, 그 문제를 운동으로 건강하게 해결하는 데에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수술을 하는 즉각적으로 그 문제에서 빠져 나오고 싶어 한다는 거다. 반면 우리 기기로는 최소 한 달 운동을 열심히 운동해야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또 국내에서는 요실금 수술비가 굉장히 저렴해서, 수술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었다. 헬스 케어 기기를 만들려고 했는데, 섹스 토이밖에 안될 것 같더라. 투자자들도 재밌어는 했지만, 진지하게 보지는 않았다.
생리컵으로 피봇하게 된 계기는 뭔가.
인류의 반이 고민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봤다. 처음에는 브래지어에 클립 형태로 채워 체온과 배란일을 측정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있었다. 이후에 우연히 생리컵을 접하게 됐고, 이거다 싶었다. 이전에 케겔 운동기를 만들지 않았나. 여성 질 구조도 잘 알고 있었고, 생리컵과 유사한 형태의 시제품도 갖고 있었다.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팀인데, 팀원 세 명 모두가 남성이다.
남자가 여성 생리용품을 왜 만드느냐는 질문이나 공격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남성이기에 생리 제품에 대해 더 객관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리는 여성에게는 불편하고, 생각하기 싫고, 부정적인 무언가가 아닌가. 우리는 당사자가 아니기에 데이터에 기반해 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여성, 남성이라는 성별 이분법적 기준이 아니라, 인류 절반이 겪고 있는 문제를 사회 구성원 중 하나가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시도라고 봐주었으면 한다. 기존의 시장은 남성 중심적이었기 때문에 여성의 생리 용품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사실 생리컵은 1930년대 탐폰과 비슷한 시기에 발명되었지만, 이후로 기술의 진보가 없었다. 하지만 현재는 사업적으로, 기술적으로 풀어낼 여지가 많다.
일반 생리컵과 다르게 스마트 생리컵은 안에 칩이 내장되어 있는 형태다. 내장칩은 무엇을 측정해주나.
생리혈의 양을 측정한다. 생리컵이 어느 정도 찼는지를 사용자가 확인할 수 있게 만드는 게 핵심 기능이다. 체내 삽입형 생리 용품인 탐폰은 생리혈이 새는 경우가 있다. 해외에서 시판되고 있는 생리컵도 마찬가지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팬티 라이너를 함께 착용한다.
생리혈의 양은 어떻게 측정하나. 무게인가?
처음에는 무게로 했는데, 볼륨 센서를 이용해 수위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센서가 생리컵 내에 혈액이 50%, 70%, 90% 찼을 때를 인지해 총 세 번을 알려준다. 생리컵 내에 진동 모터를 넣어 미세한 진동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원래는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리혈 양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들었었다. 하지만 몸 안에 있는 기기가 계속해서 스마트폰과 통신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생각보다 크더라. 전자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데, 수준도 미약하고 인체에도 무해하지만 일단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 자체가 싫었던 거다. 마치 방사능 수치가 아무리 낮더라도, 존재 자체가 깨름칙한 것처럼. 그래서 필요한 ‘교체 시점’만 진동으로 알려줄 수 있도록 기능을 수정했다.
생리컵이 체내에서 분리되는 시점의 혈량과 혈색 등의 정보가 앱으로 전송될 수 있게 설계했다. 체내는 완벽한 암흑이다. 기기 내 빛의 양을 측정하는 광합 센서가 작동해 빛이 없는 시점을 체내, 빛이 들어오는 시점을 체외라고 인지할 수 있다.
체내에 삽입해야 하는 기기이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다.
생리컵 자체는 실리콘 재질이기에 인체에 무해하다. 다만 스마트 생리컵은 칩과 전지를 내장하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걱정이 있을 수 있다. 우리 스마트 생리컵은 현존하는 가장 안전한 건전지를 사용하고 있다. 전자계산기에 들어가는 것과 동일한 사양으로, 스틸 케이스 안에 들어가 있고 용량이 작기 때문에 무해하다. 현재 내시경 기기에도 활용하는 모델이다. 건전지 말고 무선 충전 기능을 넣는 게 차라리 우리에게 유리하다. 배터리 관리를 위한 최적화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전을 위해 건전지를 선택했다.
생리혈이 줄 수 있는 정보는 어떤 것들이 있나.
생리혈량 자체가 줄 수 있는 정보가 생각보다 많다. 여성의 건강 상태에 대한 한 가지 척도가 되어줄 수 있는 것이다. 양이 너무 많으면 월경 과다로 일상 생활의 불편을 겪을 수 있고, 양이 너무 적으면 조기 폐경의 위험이 있다. 생리컵을 통해 자신의 생리혈량을 관찰할 수 있다면, 많은 질병에 대해 선제적 조처를 할 수 있게 된다. 현재 국내에는 ‘월경 과다 증상’에 대한 기준 자체가 없다. 하루 80mm 이상이면 과다로 분류하는 데, 개인마다 그 기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세부적인 정보가 필요하다. 사업을 진행해 나가면서, 그 모호한 기준부터 정립할 수 있을듯싶다.
혈색 측정도 가능하다. 해외에는 이미 자신의 생리혈 색을 기록하고 관찰하는 여성들이 있다. 일부 생리앱에서는 혈색 기록 옵션이 따로 있다. 하지만 일단 체내로 나와 산화된 혈색을 육안으로 어림잡아 기록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정확도가 매우 떨어진다. 스마트 생리컵 내에는 LED가 달려 있어 빛을 비춰 아직 체내에 있는 생리혈 색을 측정한다. 국내에서 생리혈 색과 건강 간의 상관 관계에 대한 연구는 진행된 바가 없지만, 분명 향후에는 유의미하게 활용될 수 있는 정보라고 생각한다.
의료법상으로 문제가 될 소지는 없나.
생리컵을 의료기기로 보는가, 아닌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국내 기준으로 보면 인체에 삽입하기 때문에 생리컵은 무조건 의료기기다. 그래서 적절한 기준이 생기기도 전에 국내에서는 판매가 전면 금지됐다. 하지만 미국 FDA에서는 2013년부터 생리컵을 의료기기에서 제외하고 판매를 허용했다. 우리가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이유다. 의료기기 인증을 받았을 때를 대비해서 준비를 하고는 있는데, 아직까지는 애매한 상태다.
킥스타터 반응이 좋았다. 캠페인에 다양한 국가의 후원자들이 참여했고.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국가는 어디였나.
미국이다. 70%인 4,900개를 미국의 여성들이 구매했다.
본격적인 양산을 앞두고 있다. 그간 가장 어려웠던 점은 뭔가.
다 어려웠다. 돈도 많이 들었다. 양산 빼고 개발 과정에만 6, 7억이 들었다.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에 제품 디자인부터 기술 개발까지 모두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해야 했다. 소주잔 크기 정도 실리콘 제품에 칩과 센서 등 기능을 다 넣어야 하기 때문에 기술적 난이도도 높았다. 반면에 가격은 저렴하다. 기존 생리컵이 40달러 정도인데, 스마트 생리컵은 그 4분의 1 수준이다. 이렇듯 해야 할 일들이 굉장히 많았다. 연말 정도에 양산을 마무리 짓고 내년 초에 제품을 배송할 계획이다.
캠페인 이후의 시장 유통 계획은 어떻게 잡고 있나?
직접 유통할 생각이고, 시중에 판매하는 구조는 아니다. 월정액 구조로만 서비스 할 예정이다. 일종의 리스 개념이고, 6개월에 한 번씩 컵을 교체해 주는 형태다. 리스가 가능하려면, 자동차나 정수기처럼 사용도가 꾸준히 유지되는 제품이어야 한다. 생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월정액 구조가 적합할 거라고 봤다. 우리가 측정한 가격은 9 달러인데, 미국에서 탐폰 사용자가 월마다 지출하는 비용과 같다. 데이터를 확보해 그 분야 비즈니스를 더 개발하면 스마트 생리컵 자체의 가격을 계속 낮출 수 있을 것이다.
구독 형태라면, 건강 식품이나 의약품과 붙여 커머스 분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커머스보다는 메디컬 분야로의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생리혈 자체를 분석하고 그 가치를 찾아내는 일이다. 우리는 세계 인류의 반에게 매달 자신의 혈액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비즈니스를 한다고 믿는다.
생리혈이 여성에게 스스로의 건강을 관리할 수 있게 돕는 일종의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접근은 새롭다.
우리의 캐치프레이즈가 ‘버리는 생리에서 모으는 생리로’이다. 시장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기회의 유무가 달라진다. 생리혈을 버리는 것으로 규정지었던 시대에는 탐폰이 승리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생리혈을 모아서 들여다보는 것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시대가 왔다. 생리혈 안에는 피 뿐만 아니라 분비물, 자궁 내벽 조직 등 다양한 물질이 들어있다. 기존 혈액 분석을 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피를 제외한 모든 것이 이물질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게 건강에 대한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현재 생리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들었다.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팀과 작년부터 생리와 생리용품의 역사, 그 대안에 관해 이야기 하는 작품을 촬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제작팀 모두 생리컵 사용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모두 생리컵 예찬론자가 됐다. 제작이 마무리되면 해외 영화제 출품도 계획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를 말해달라.
단기적으로는 탐폰을 대체할 수 있는 스마트한 생리용품을 출시해 시장을 점유하는 거다. 현재 탐폰과 경쟁하기 위해 비즈니스 모델, 단가, 기술 등을 다듬는 과정에 있다. 탐폰 시장을 점진적으로 잠식해나가고자 한다. 장기적으로는 생리혈이 보유한 정보 혹은 거기 담겨 있는 비밀들을 우리가 분석하고 해독할 수 있는 기술력을 계속 개발해나가고 싶다. 스마트 생리컵을 통해 지금까지 마치 벌칙처럼 괴롭고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졌던 생리가, 여성이 매 달 자신의 건강을 확인할 기회로 인식되길 바란다. 여성이 생리를 40년 동안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생리혈은 매달 자신의 건강 리포트를 들여다볼 수 있는 블랙박스다. 그 가치를 밝혀내는 것이 우리의 미션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