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약사들은 우리 앱을 ‘라이프 세이버’라고 짧고 굵게 표현해 준다. 국내 약국이나 병원 약국 관계자는 ‘야근을 하지 않게 해 줘서 고맙다’는 후기를 남겨주고 있다. 가장 보람을 느꼈던 피드백은 ‘단순 업무, 반복 업무가 줄어서 환자 케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서비스를 만든 취지가 그것이다.” – 박상언 메딜리티 대표
AI 기반의 약국 디지털 전환 스타트업 ‘메딜리티‘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약국 내 비효율을 개선하는 기업이다. 대표 서비스인 알약 카운팅 앱 ‘필아이(Pilleye)’는 한 번의 촬영으로 최대 1천 정의 알약을 99.99% 정확도로 셀 수 있다. 손으로 알약을 세야 했던 의료 서비스 제공자들의 시간을 130만 시간 이상 절약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21년도에 론칭된 필아이는 올해 7월 기준 전 세계 225개국에서 40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했고 월 이용자는 15만 명을 넘어섰다. 회사는 성장성을 인정받아 다수의 VC로부터 프리 A 라운드에서만 56억 원 규모 투자유치를 하기도 했다.
약사 출신 박상언 대표는 왜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걸까. 약국에서 알약을 세는 일이 도데체 얼마나 중요한 걸까. 약국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어떤 의미일까. 박 대표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상언 메딜리티 대표 ⓒ플래텀
스타트업 창업 이전 구미와 서울에서 약국을 운영했다.
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했고, 경상도 구미에서 동업자와 함께 약국을 운영했다. 매출도 잘 나오고 안정적으로 운영됐지만 수도권에 가서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2층 규모 약국을 하나 인수했는데, 내부 운영 프로세스가 많이 엉킨 게 보였다. 일손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부서의 위치나 동선 등 운영 시스템이 비효율적이었다. 소아과 약 하나 제조해서 나가는 데 45분이나 걸리더라. 한 달 간 운영한 뒤 영업이익을 계산해 보니 그대로 가면 망하겠더라.
구미에서 약국을 운영할 때 운영 시스템을 만드는 역할을 했기에 서울에서도 한번 바꿔보자 싶었다. 인테리어를 새로 하고, 2층에 있던 조제실을 1층으로 옮기고, 직원들의 동선을 감안해 기구도 재배치했다. 기계 자동화가 가능한 부분은 모두 자동화시키고, 행정 부분도 불필요하다고 생각된 건 생략했다. 그러고 나니 환자들이 약 받는 시간이 빨라지고, 영업이익도 인수 당시보다 10배가량 올라갔다.
약국을 잘 운영하고 있는 과정에 스타트업 창업을 시도했다. 계기나 동기는 뭐였나?
창업이라 생각하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이전부터 약국이나 약사의 불필요한 반복업무를 효율적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다. 특히 알약 카운팅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봤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인물 사진은 표정과 상관없이 잘 인식하고 분류해서 저장까지 해주는데, 왜 알약은 식별이 안될까라는 의문이 있었다. 앱마켓에 카운팅앱이 있기는 했지만 실제로 사용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한번 만들어 봐야겠다라는 결심을 했다.
그 생각을 한 날 바로 숨고에 ‘AI로 이러한 것을 개발하고 싶은데, 기초 가르쳐 주실 분을 찾는다’라는 글을 올렸다. 다행스럽게도 몇 명이 지원해 줬고 그중 한 AI 엔지니어에게 파이썬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C언어를 공부한 적이 있어서인지 나름 수월하게 학습이 됐다. 이 일의 시작점이다.
배우면서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한 거다. 초기 서비스는 어떻게 만들었나.
혼자 하는 것보다 협업하면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날 가르쳐 주던 AI 엔지니어에게 함께 알약 카운팅 솔루션을 개발해 보자고 제안했고 그도 흔쾌히 손을 잡아줬다. 엔지니어는 개발에만 집중하고 그 외 나머지 일은 내가 맡아서 했다. PM(Product Manager)나 PO(Product Owner) 같은 역할이었다. 처음 앱이 완성되었을 때 너무 감격스러웠다. 자료를 준비하고 학습시키는 등 여러 과정을 거쳐 결론을 냈다는 것에서 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지금까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 중에 하나일 거다.
당시 앱의 카운팅 정확도는 얼마나 됐나. 만족스러웠나? 불만족스러웠다면 어떤 식으로 개선했나. 원하는 결괏값은 언제 나왔나.
90.0% 정도였는데, 약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사실 의미 없는 숫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개발자와 함께 학습 데이터를 늘려서 올릴 수 있는 정확도를 계산해 보니 92-93% 정도가 최대치라는 결론이 났다. 당시 약사 커뮤니티에 앱 개발기를 올리고 있었는데, ‘99%는 되어야 쓸 수 있다’라고 의견을 주더라. 개인적으로 95% 정도면 귀찮은 업무를 덜어낼 수 있을 거라 봤는데 사용자의 기준이 생각보다 높았다. 그 상태에선 출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안으로 엔지니어가 하드웨어로 개발 방향을 바꿔 보자고 했다. 정확도가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사진을 찍을 때 주위 환경이나 상황들이 너무 다양해서 모두 대응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하드웨어로 방향성을 바꾸면 통제된 환경에서 알약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그 상황에서 AI 모델을 적용하면 99% 이상의 정확도도 노려볼 만하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하드웨어는 설계, 제조, 생산, 양산, 테스트, 금형 등 다양한 이슈가 따라오기에 작은 기업이 하기엔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적으로 알약 카운팅 결과를 높이는 부분에 조금 더 집중하기로 했다.
당시 결과를 분석해 보니 적은 수의 알약 카운팅은 굉장히 정확했다. 그래서 알약 사진을 여러 모델로 만들어서 학습시켜 예측한다면 다량의 알약 카운팅 수치도 높아질 거라는 가설을 세우게 됐다. 실제 학습을 시켜보니, 정확도가 98.7%로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여전히 프로덕트 마켓 핏(PMF)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가능성을 보게 된 거다. 그다음은 반복의 연속이었다. 여전히 예외 상황은 많았고, 여러 모델 방식을 테스트하면서 꾸준히 개선시켜 나갔다.
결국 1년 반 정도 후에 99.2%의 정확도가 나왔다. 이 소식을 커뮤니티에 올렸고, 약사들이 격하게 환영해 줬다. 이후 입소문을 통해 빠르게 공유가 되면서 ‘필아이’라는 서비스와 ‘메딜리티’라는 스타트업이 탄생하게 됐다. 사명 메딜리티(MEDILITY)는 메디슨(Medicine)과 유틸리디(Utility)의 합성어다.
아이디어와 실제 개발을 통해 구현하는 것은 다를 거다. 초기 서비스 개발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메딜리티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도 있는데, 지금 하는 것이 정말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거다. 시작 당시에는 시장에서 통할만큼의 정확도가 나온다는 확신이 없었기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고민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는 희망을 가지고 이어갔다.

박상언 메딜리티 대표 ⓒ플래텀
스타트업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 안정적인 영역에서 변수가 많은 영역으로 온 건데.
열렬히 응원받지는 못 했다. (웃음) 내게 창업은 내 시간과 노력이 많이 투입되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해 볼만 것이었다. 다만 시기적으로 첫째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 정도 된 시점이라는 게 걸렸는데, 고맙게도 와이프가 나를 믿어줬고 한번 해보라고 격려해 줬다. 큰 힘이 됐다.
작은 스타트업에 우수한 인재가 오는 건 천운이다. 팀빌딩은 어떻게 했나?
초창기 함께 했던 개발자는 큰 회사로 이직을 해서 서로 행운을 빌어주며 이별했다. 그래서 채용 플랫폼을 통해 함께할 엔지니어를 구했는데 정말 안 찾아지더라. 그도 그럴 것이 투자도 받지 않은 작은 스타트업에 누가 쉽게 오려고 하겠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주 접속하는 커뮤니티 사이트 익명게시판에 구인 글을 올렸는데 몇 사람이 연락을 줬다. 그렇게 팀빌딩을 했고 그때 합류한 인재들 대다수가 지금도 함께하고 있다. 특히 그중 한 사람은 현재 회사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될 정도로 운 좋게 팀구성을 한 거다.
단순히 운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거다. 설득이 됐기에 좋은 인재가 합류했을 텐데.
투자자를 설득하는 거나 팀원을 설득하는 건 똑같다고 생각한다. 벤처캐피털은 회사에 재무적 투자를 하는 거고, 팀원은 시간을 투입하는 거다. 때문에 이 사업이 현실성이 있는지, 사업의 미래는 어떠한지, 대표는 어떤 사람인지를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 그래서 팀원 한 사람, 한 사람 뽑을 때마다 정말 최선을 다 해서 IR을 했다. 이런 기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스타트업은 늘 일손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무작정 뽑을 수는 없다. 본인만의 HR 기준이 있나?
감명 깊게 읽었던 책 중의 하나가 에릭 슈미트가 쓴 ‘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다. 그 책의 핵심은 ‘최고의 인재를 뽑고, 그 인재가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라고 할 수 있다. 메딜리티도 그런 기준에서 운영된다.
인재를 뽑는 데 있어 꼭 지키는 것은 절대 타협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얼리스테이지 스타트업은 엔지니어 한 명이 아쉽기에 어느 정도 기능 적합성만 맞으면 뽑는다. 이해되는 부분이고 그게 현실적으로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린 기능적으로 핏이 맞아도 회사문화와 부합되지 않는다면 포기한다.
메딜리티의 기업 문화는 뭔가? 그리고 회사 입장에서 최고의 인재는 어떠한 사람인가? 스페셜리스트만 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팀은 아닐 텐데.
메딜리티는 자율도가 굉장히 높은 회사다. 무슨 일을 하는지, 몇 시간을 일하는지, 어디에서 일하는지 등을 본인이 스스로 정한다. 업무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회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주니어급이라고 해도 자신의 자리에서 성장 곡선이 빠른 사람이 최고의 인재다. 스타트업은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계속 새로운 일을 배워야 한다. 우린 그걸 빨리 흡수할 수 있는 사람을 최고의 인재라고 본다. 시니어급은 기능적인 부분에선 말할 것이 없다. 다만 주변의 주니어, 미들급 엔지니어가 잘 성장할 수 있게 돕고, 주위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정한 목표에서 성취를 이뤄본 사람이어야 한다. 무언가 진득하게 끝까지 해본 사람은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스타트업은 프로 축구팀과 같다. 프로 축구는 경기 중 감독이 일일이 지시를 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선수가 스스로 움직이잖나.
메딜리티는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곳이라고 자부한다. 특히 팀원들이 자신과 직장을 지키기 위해 최고의 인재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준다. 메딜리티가 좋은 회사로 남아 있으려면 계속 인재가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해 준다.
최고의 인재를 뽑고, 문화를 만드는 이유는 회사가 성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우수한 프로덕트가 나와야 한다. 좋은 프로덕트가 나오려면 높은 프로덕트 역량이 필요하고, 최고의 역량은 최고 수준의 팀원과 문화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은 성장이 멈추면 끝이다. 회사가 계속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직원들의 인사 평가는 어떻게 하나? 그리고 직원 보상 정책은 어떤 것이 있나?
메딜리티는 개인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을 설정하지 않는다. 조직의 목표만 있을 뿐이고,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한다. 인사고과는 없고 개인의 역량이 올라갔을 때 처우 조정이 있다. 보상 정책은 여느 얼리 단계 스타트업처럼 스톡옵션을 부여하고 있다. 레이트 단계로 가더라도 고갈되지 않도록 스톡옵션 풀을 명확하게 구분 지어 놓고 있다.
직원에게 스톡옵션등 보상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도 한두 번 경험하면 자극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본인들이 기여하고 만든 서비스가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경험을 하는 것이 더 큰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메딜리티의 사업은 그런 동기부여와 부합되는 부분이 있다.
우리가 신이 아닌 이상 원하는 인재만을 찾을 수는 없다. 회사가 못 보는 사각지대는 동료평가 하나만으로 결정한다. 단순하게 함께 일하고 싶은지에 대한 직원들의 의견이다. 메딜리티가 계속 수준 높은 조직 문화를 유지하는 방법이고, 실제로 잘 작동되고 있다.
팀원이 발전하는 만큼, 대표의 역량도 커져야 한다. CEO로서 어떤 노력을 하나. 그리고 회사를 운영할 때 어려운 점은 뭐가 있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루트로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스타트업 창업 전 내 배경은 약국을 운영해 본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공부가 많이 필요하다고 늘 생각한다. 회사의 성장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대표의 역할을 미리 예측하고 역량을 쌓아두려고 노력한다. 특히 여러 엔젤투자자, VC 등 훌륭한 어드바이저들에게서 많이 배운다.
‘필아이’ 이야기를 해보자. 의료 종사자들에게 알약을 정확히 세어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어떤 페인포인트가 있는 건가?
필아이는 약과 관련된 모든 곳에서 필요한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가장 많이 쓰는 고객은 국내외 약사들이다. 그리고 요즘은 동물병원에서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일부 제약사에서 QA(Quality assurance)를 하는 데 사용하기도 하고, 인천세관에서 마약류 압수 과정에서 이용하기도 한다.
약국에서의 페인포인트는 약을 세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거다. 이쪽 업계 종사자가 아니면 약을 왜 세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약국에선 기본적인 일이다. 1000알짜리 약병이 있다고 치자. 그 병이 오픈되어 있으면 한 두 알이라도 분실될 수 있기에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처방전 조제할 때도 필요하다. 보통 변비약과 같은 것들은 6개월 또는 1년 치 처방전을 한꺼번에 받는다. 그러면 300알씩 필요하게 되는데, 큰 약통에서 필요한 숫자만큼 꺼내서 하나씩 세서 나간다. 단순하지만 한 알도 틀리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척 중요한 일이다. 필아이 이전까진 하나씩 카운팅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창업 초기부터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서비스 개발을 했다.
서비스를 기획할 때는 지금보다 AI가 보편화되지 않은 시기였고, 성능도 높지 않았다. 당시 여러 전문가들에게 추천받았던 기술은 이미지를 처리하는 알고리듬인 ‘오픈CV(OpenCV : Open Source Computer Vision)’였다. 하지만 알약은 누워있기도 하고, 비스듬히 서 있기도 하고, 반으로 잘려 있는 경우도 많다. 사진을 찍는 환경도, 배경도 다양하다. 하얀 책상에 알약을 두고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까만 바닥에서도 찍을 수 있고, 불이 다 꺼진 환경에서도 찍을 수 있다. 특히 흰색 판에 흰색 알약이 있으면 알약과 바닥 경계선을 구분하는 것이 진짜 어렵다. 알약이 투명한 색이면, 바닥에 따라 알약 색깔이 다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오픈CV로는 다양한 상황을 처리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학습이 가능한 AI로 풀 수밖에 없었다.
환자에게 처방되는 약은 카운팅이 100%에 가까울 만큼 정확해야 의미가 있을 거다. 이를 위해 어떠한 부분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나? 아무래도 데이터셋 퀄리티를 많이 신경 쓸 듯싶은데.
제품 출시를 하는 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서비스를 론칭한 지 2년 8개월 정도 됐는데, AI 학습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MLOps(Machine Learning Operation)도 계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해외에서 서비스를 하다 보니, 생각하지도 못했던 예외사항들이 계속 나온다. 후처리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줄여나가고 있다.
필아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230여 개국에서 활용되고 있다. 해외 진출은 어떤식으로 접근했나?
제품 자체가 쉽고 효용성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본다. 알약을 세는 것은 해외 약국에서도 똑같이 존재하는 문제였고, 우리 서비스가 잘 작동하기에 퍼져 나간 거다. 마켓 핏이 맞지 않는데 마케팅만으로 매출이 오르거나 성공하는 것은 신화 같은 일일 거다.
제품을 개발했을 때 레딧이나 약사 커뮤니티에 제품을 알리는 노력도 했다.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서비스다 보니 빠르게 전파됐다. 초반부터 검색에 잘 걸릴 수 있도록 SEO(Search engine optimization)도 신경 썼다. ‘Pill counting’이나 ‘알약세기’라고 검색했을 때 상단에 걸리게 하고 싶었다. 검색 통계를 보면 구글 검색이나 입소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 98% 비율이다. 커뮤니티, 잘 맞는 마켓 핏, 검색순위 높이기 등과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잘 작동됐다.
얼마 전에 대만 쪽 MAU(Monthly Active Users)가 말도 안 되게 올랐다. 10명 수준에서 한 달 만에 3천 명까지 올라갔다. 그전까지 대만에 시장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살펴보니 대만의 유명한 인플루언서 약사가 우리 서비스 사용기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지속적으로 올렸던 것이 발단이었다. 그 약사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DM을 보내기도 했다. (웃음)
어느 나라에서 가장 반응이 좋은가? 그리고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미국에서 반응이 가장 좋다. 한국은 여러 알약을 파우치에 1회 복용량으로 포장해 주는 데 반해 미국은 조그만 통에 담아주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재고 조사도 한국에 있는 약국보다 훨씬 많다.
필아이 앱 전용 트레이를 판매하고 있다. 초기에 시도하지 못했던 하드웨어가 최근에 나온 거다.
디자인 특허도 받았고, 실제 약국 개업선물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웃음) 현재 필아이 앱을 약사들이 많이 쓰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였다.
운영하면서 정말 다양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텐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용자를 우연히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병원 약국 근무자였는데, 한 달에 한 번 재고조사를 할 때 10명이서 10시간을 일해야 끝났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앱을 쓰고 난 뒤 리소스가 절반으로 줄었다고 전해 줬다. 재고조사가 있는 날은 야근하는 날이었는데, 정시에 퇴근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환자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우리가 이 사업을 하는 취지가 그것이다.

지난 8월 17일 강남구 역삼동 구글코리아 오피스에서 진행된 ‘구글 창구 프로그램 5기 미디어 라운드테이블’에서 박상언 메딜리티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가 패널로 나서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메딜리티는 창구 5기 선정 기업이다. ⓒ플래텀
메딜리티는 약국 업무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약국에 디지털 전환은 왜 필요한 건가? 약사들의 역할이 미래엔 어떻게 달라질까?
지금까지 약사들이 해왔던 업무 상당수가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이었다. 소위 잡무가 2/3고 프런트에 나와서 환자를 응대하는 시간은 1/3 비중이다. 그래서 단순 반복 업무를 AI가 대체한다면 상당수가 직장을 잃는다는 분석이 있다.
그런 의견은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리다고 본다. 4차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디지털 헬스케어 영역이 굉장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디지털 테라퓨틱스, 웨어러블 디바이스, 각종 유전자 측정 검사가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소비자가 전문가 도움 없이 그것들을 잘 활용할 수 있다고 보진 않는다. 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회에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잖나. 약사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 환자들이 많을 거다.
우린 약사들의 역량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보고 있다. 그간 눈에 띄지 않았던 건 사회에 기여할 기회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고 뒷단의 업무가 너무 많아서 일거다. 단순 업무를 제거해 준다면 약사들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에 시간 분배를 할 거라 본다. 벨류가 낮은 업무는 필아이같은 솔루션이 해결하고, 약사들은 헬스케어 전문가로서의 환자 케어에 더 집중하게 한다면 사회에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일본과 미국의 약사들은 헬스케어 전문가로서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미국 약대에서는 약사들의 직능 가치를 ‘가장 접근하기 쉬운 헬스케어 전문가’라고 가르친다. 예를 들어, 미국은 노인 환자가 여러 병원에 가서 약을 타야 할 때 처방중재를 약사가 한다. 의사가 일일이 그것을 다 볼 수 없고, 약에 대한 전문가는 약사이기 때문에 직접 할 수 있다. 일본 같은 경우는 방문이 필요한 환자가 있으면 역으로 약사가 찾아가서 환자케어를 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렇듯 선진국에서는 약사가 헬스케어 전문가로 역할을 하고있다. 우리나라 약사들도 이러한 흐름을 읽고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56억 원 규모 투자를 마무리했다. 프리 A 라운드에선 적지 않은 규모다. 경험자 입장에서 투자유치를 준비하는 스타트업에게 조언해 줄 내용이 있다면.
IR이라는 행위는 벤처캐피털에게 공감을 얻고,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다. 그렇다면, 철저하게 그들의 문법에 따라가야 한다. 안이하게 접근하면 에너지만 쏟고 성과 없이 끝날 가능성이 높다. 철저하게 그들이 선호하는 문법 하에서 지표를 보여줘야 하고, 그 지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근거도 보여줘야 한다.
VC는 다양한 측면에서 팀을 측정한다. 그러나 결국 본질은 멀티플 회수에 있다. IR은 지금보다 나중에 회사나 서비스가 더 커질 것이고, 근 미래에 굉장히 잘 될 거라는 스토리 라인을 보여주는 거다. VC들은 투자 대비 10배, 100배를 벌어다 줄지를 가늠하고, 기업 가치가 그만큼 되려면 어떠한 트랙션이 필요한지 생각한다. 그렇다면 스타트업은 그 트랙션에 필요한 마일스톤을 제시하고 달성된 것과 나중에 될 것, 그리고 완성된 형태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걸 담은 스토리 라인은 누가 봐도 납득이 되어야 한다.
단기적인 회사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리고 메딜리티가 그리는 사업의 최종장은 어떤 그림일까?
약사들을 고생시키는 업무 중에 약품 포장 검수라는 것이 있다. 그걸 쉽게 할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약국 업무의 디지털 전환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구글의 워크스페이스나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처럼 모든 약사가 메딜리티 라인업들을 쓰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끝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부분은 꼭 반영하겠다.
그렇다면 할 말이 하나 있다. “여보 믿어줘서 고마워. 사랑해!”

박상언 메딜리티 대표 ⓒ플래텀